겸손

desk

I know that I’m intelligent, because I know that I know Nothing.

– Socrates

모든 인용문, 특히 죽은지 시간이 오래 흐른 유명 인사의 인용에는 일정한 비판이 따른다. 그 사람이 과연 그 말을 했을까? 혹은, 우리가 그 의미에 대해서 오해하고는 있지 않은가? 후자에 대한 의문, 즉, 구문의 해석에 대해서는 석학들이 우리를 대신해 연구해왔고, 전자의 의문에 대해서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 ‘이유’에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위 인용문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이다. 소크라테스가 저런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현자로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내가 진정 ‘안다’라고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는지 의문스러웠고, 결국 내가 진정으로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 것을 깨닫는 것이 참된 앎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웹 상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통설이고 어디서부터는 아직도 가설에 불과한지가 명확하게 자리잡지 않은 사람들. 혹은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서 일부를 안다고 마치 모든 것을 궤뚫어 보는 양 떠드는 사람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그런 식으로 떠들어 댐으로써 오히려 본인이 아는게 적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까?

겸손해야 한다. 무작정 겸손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게 중요하다. 어느 순간, 충분히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내가 아직은 부족할 ‘수도 있겠다’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다 보면 ‘역시’ 나는 아직 부족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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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에서 개인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느끼는 자료,원문:링크

학문의 길을 걷는 인간을 가정할 때, 기본적으로 (유치원)초등학교, 중학교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학문의 길을 걸을 인간의 교육 과정은 거의 유사하다. 여기까지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장 큰 갈래는 고등학교 진학부터 시작된다. 인문계열과 이공계열, 상공계열, 공과계열로 나뉘어 자신의 분야에서 사용될 기본 지식을 쌓기 위해 나아간다. 각 계열에서 이룬 성적을 통해 계열에 해당하는 대학 학부에 진학하게되고, 그곳에서 인류 지식의 매우 작은 일부분을 습득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자신의 지식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개인은 심각한 오류에 빠져드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속한 분야의 학부에서 쌓은 지식만으로 내가 인류의 지식 중 꽤나 많은 부분을 습득한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우물 안 개구리의 상황과 유사하다. 본인이 아는 것이 그 분야밖에 없고, 관심 있는 분야도 그것 하나이다보니 시야가 좁다.) 깊이와 넓이 모두에서 틀린 생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데, 깊이 측면에서는 본인의 분야에서도 아직 더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이고, 넓이 측면에서는 본인이 전공하지 않은, 심지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무수히 많은 분야에서 무수히 많은 개인이 인류의 지식 발전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수동적’ 겸손?

학문의 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학문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물론, 이 예를 통해 오히려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글에서 얘기하는 ‘겸손’을 득하지 못한 인간은 이어서 나올 예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비난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보인다.) 형이나 아버지에게 CPU라는 것에 대해 들은 초등학생 1학년 김 군은 친구들에게 가서 ‘너희는 CPU가 무엇인지 아느냐?’라며 자랑하듯 떠들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중학생 이 군은 속으로 ‘겨우 CPU를 알았다고 아는 체를 하다니, 우습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인 형에게 ‘오늘 길을 걷다가 CPU를 안다고 친구들을 무시하는 초등학생을 보았다. AMD,INTEL은 알지모르겠다’며 카톡을 보내지 않을까?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박 군은 컴파일러, 운영 체제 수업 시험을 준비하느라 지쳐있다가 이 카톡을 보고 또 다시 비웃는다. ‘너가 비웃는 초등학생이 내가 보는 너의 모습이다’며 말이다. 이런 진행은 그 어떤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누가 어떤 사람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가만히 있자. 물론, 이것은 매우 수동적인 ‘겸손’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좋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도 좋다. 수동적 ‘겸손’으로 비롯되어 나중에는 진실된 겸손을 깨우치는 순간이 온다. 누가 어떤 사람일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아는게 없다. 진짜 안다고 할 수 있는게 뭔지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사실 모르는게 있었다.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안다’는 것과 ‘들어보았다’ 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회화에서 우리가 ‘안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사실은 ‘들어보았다’를 의미할 때가 많다.(A:”칸트에 대해서 아니?”, B:”응, 알아'”/B가 철학 학사 전공에, 칸트 전공이라 알까? 아니면 그냥 칸트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보았던걸까?) 논쟁으로 발전할 경우 이 차이가 심각하게 작용하는데, 다른 사람과 내가 모두 ‘안다’면 공유해야할 배경지식을 사실은 어느 한 쪽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 결론 도출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그런 상황이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안다’라는 단어를 재규정할 사회적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다’라는 단어는 내가 그것과 관련하여 일정 시간 이상 읽고, 공부했거나, 그것과 관련한 전공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아는 것’이 아닐까?(*알다라는 단어가 원래 그런 의미로 쓰인다고 주장하는 독자가 있을 염려에 덧붙인다. [출처:국어사전] 알다 : 1. 교육이나 경험, 사고 행위를 통하여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추다, 2.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끼다. 등, 심지어 유의어로 등장하는 단어들은 더욱 심오하다. 1. 기억하다, 2. 깨우치다, 3. 납득하다)

자신감 vs 겸손함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라고 물을 시점이 되었다. 결론은, 겸손하자는 말이다. 다만, ‘겸손함을 전면에 드러내며 사는건 자신감의 결여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자신감과 겸손함은 병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겸손하다는 것이 그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해라는 말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자신감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겸손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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